[서병기 연예쉼터] ‘설리 다큐’가 불편했던 이유-소재주의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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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 ‘설리 다큐’가 불편했던 이유-소재주의의 위험성

    • 입력 2020.09.23 11:10
    • 수정 2020.12.10 14:06
    • 기자명 칼럼니스트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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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지난 10일 MBC ‘다큐플렉스’에서는 25살의 꽃다운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된 고(故) 설리의 삶을 조명한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편을 방송했다.

    방송이 나간후, 설리의 한때 남자친구였던 다이나믹듀오 최자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설리 엄마인 김수정 씨의 인터뷰를 통해 “설리의 열애설이 나기 전까지는 온가족이 행복했다”는 말이 방송을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자가 설리 불행의 단초를 제공했는지는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최자는 비난받을 근거가 없다.

    제작진도 이를 진화하고 나섰다. 설리 다큐를 연출한 이모현 PD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자를 비난할 의도가 없었다고 했다. 제작자는 최자를 비난할 의도가 없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자는 많은 악플에 시달리게 됐다. 

    왜 그럴까? 다큐 연출자가 소재주의에 입각해 아이템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물다큐의 소재주의는 지금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는 인물이나,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인물을 택하는 게 아니라, 시청률이 많이 나올만한 인물, 가령 적당한 자극성과 호기심 요소를 갖추고 있어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인물을 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설리 다큐는 그 이전 주 방송에 비해 2%P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다큐물로는 높은 시청률이 나왔고 이를 부각시켜 홍보했다. 하지만 다이나믹듀오 멤버인 개코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고의 시청률이 제작의도였다면 굉장히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는 글을 올렸다.

    이 때문에 이번 ‘설리 다큐’의 엄청난 후폭풍은 인물다큐를 얼마나 세심하게 제작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물론 제작진은 설리의 정신을 짓눌렀던 요인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했음을 전하려는 노력은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는 별개로 제작 기법에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래서 제목으로 붙인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가 ‘다큐가 왜 불편하셨어요?’가 돼버렸다.

     

    고(故) 설리의 삶을 조명한다는 것은 가족사, 개인사(연애사, 친구관계)를 포함한다. 둘 다 제 3자가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무리 취재를 다각도로 열심히 해도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면 애당초 다루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복잡 다단하고 미묘한 문제를 한 요인으로 단정지어 생각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설리 엄마인 김수정 씨의 인터뷰를 통해 “설리의 열애설이 나기 전까지는 온가족이 행복했다”는 말을 전한 건 편집되어 방송에서는 빠져야 했다. 꼭 이 말을 넣어야 했다면 연애후 남자친구 문제 외에도 설리를 힘들게 한 요소들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했다. 

    엄마라 해도 성인인 자식의 연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설리 엄마의 경우는 설리가 연애를 한 이후부터는 딸과 거의 단절 상태였기 때문이다. 설리가 엄마와 단절했다는 멘트로 끝내고, 연애후에 설리가 불행해졌다는 엄마의 말만 방송되니 화살이 최자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설리 다큐’ 제작에서 드는 또 하나의 의문은 제작진이 인터뷰를 했던 한 내용이다. 이모현 PD는 한 매체를 통해 “(설리) 엄마는 ‘딸이 혼자 외롭게 살다가 최자와 연애하면서 행복해했다. 딸에게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준 최자에게 고맙다’고 말했다”면서 “프로그램 분량상 해당 부분이 편집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설리 엄마의 이 생생한 멘트를 왜 편집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분량상이었다고 했는데, 이 다큐물이 10분짜리로 편집된다 해도 이 말만은 살려야 했다. “딸이 최자와 연애하면서 행복해했다”는 설리 엄마의 말은 쏙 빼버리고, “설리의 열애설이 나기 전까지는 온가족이 행복했다”는 설리 엄마의 말만 살렸다는 건 다큐의 기본제작법을 망각한 처사다.전자를 살렸다면 최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물다큐는 선정과정부터 신중하고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며, 섣불리 만들어서는 안된다. ‘소재주의’에 굴복하면 더욱 위험해진다. ‘소재주의’에 빠지면, 인물의 진심보다 자극성이 더 강하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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