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의료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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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의료 사회주의

    • 입력 2020.09.27 00:00
    • 수정 2020.12.10 14:05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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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의사가 먼저 찾아갑니다, 지금」이라는 제목의, 코로나19와 관련해 쿠바의 공공의료를 다룬 한 언론사의 특집기사를 세 번 읽었다. 처음엔 놀랐고, 다음엔 부러웠고, 마지막엔 화가 났다. 놀라움과 부러움과 화는, 사실, 기사를 읽는 동안 수시로, 번갈아가며, 일어났다. 손소독제조차 변변히 없는 쿠바의 열악한 상황에 놀라고, 그것을 극복해내는 그들의 지혜가 부럽고, 이즈음에 벌어진 ‘우리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겹쳐지며 화가 나는 식으로. 

    “공공의료의 나라 쿠바에선 의대생들이 매일 주민을 찾아가 아침 인사를 한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로 시작해 “오랜 경제봉쇄로 의료품은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개인정보가 전산화되지 않아 디지털 방역을 하기도 어려운 쿠바로선, 그나마 풍부한 의료 인력에다 의대생을 더해 ‘인해전술’을 펼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역 수단일지 모른다. 한명 한명의 건강 변화를 일상적으로 점검하면서 감염 징후를 가급적 빨리 파악하는 것 - 이것이 현재 쿠바가 코로나19와 싸우는 방법”이라는 대목을 지나 “주치의는 마을 주민들의 건강 정보를 주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갱신, 축적한다.

    만약, 주민이 코로나19에 감염돼 ‘특별 격리시설’로 옮겨지더라도, 주치의는 이송과 치료 과정 전반에 개입하며 상급기관 의료진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데 이르면 놀라움도, 부러움도, 치미는 화도 무의미해진다. 우리가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실, 가지려고도 하려고도 들지 않겠지만.

    쿠바의 공공의료 기사를 읽다가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영화감독 켄 로치(Ken Loach)의 「1945년의 시대정신(The spirit of 1945)」이 겹쳐졌다. 「1945년의 시대정신」은 우리의 사회교과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지상낙원과도 같은 사회복지의 천국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상상에서나 가능한 이 ‘천국’이 실제로, 그것도 30여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사회주의’를 곧 ‘빨갱이’로 치환해버리는 정치적 잣대가 얼마나 저열한 것인지를 강렬하게 인식시켜준다. 이것이 구현된 나라가 구소련이나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민주의(社民主義)로 불리는 사회민주주의가 영국과 독일, 프랑스, 북유럽의 주요한 정치사회적 근간이란 사실은 상식에 속하지만, 켄 로치의 흑백화면에 드러나는, 이차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1945년에 노동당이 집권하며 펼쳐내기 시작한 놀라운 ‘천국의 지형도’는 인간이 결코 이기적 존재이지만은 않다는 희망과 정치세력이 내거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라는 슬로건이 헛된 공약에 그치지 않을 때 어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논픽션으로 재현한다.

    공공의료, 혹은 무상의료 내지 최소 의료비 부담을 통해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에서 구현되는 의료 시스템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것과 가장 극단에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참상’이 드러난 미국의 경우, 공적의료보험이 환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적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적보험과 사적보험의 비율이 3:7이라는 미국에서 환자가 환자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높은 보험료를 부담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인이 되는 길 밖에 없다. 아니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의료보험 시스템을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말로 정리하거나 “아픈 치아를 집에서 뽑고, 찢어진 상처를 친구가 와서 낚싯바늘로 꿰매주었다”는 식의 엽기적 사례가 회자되는 23일 오전 기준 미국의 의료상황은 전 세계 확진자수는 3150만5063명, 사망자 약 97만 명 가운데 20만 명이라는 코로나19 관련 통계수치들과 무관할까? 미국에서 코로나19 초기 진단비용이 907 달러(약 100만 원)라거나, 확진 이후 발병이 되었을 때 소요되는 최종 치료비용이 3만5000달러(약 4000만 원)에 이른다는 얘기는 악의적인 헛소문이었으면 좋겠다.

    공공의료 개념을 기반으로 한 쿠바와 민영의료를 기본으로 한 미국 -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두 국가 사이의 판이한 다름은 의료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지향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공공의료’만이 답일 수는 없겠으나, 왠지 선택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이즈음, ‘미래 우리의 의사’들에 대한 불신과 이 까닭모를 불길함은 또 무슨 끈끈한 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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