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일상] 불안(不安)을 직시(直視)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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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일상] 불안(不安)을 직시(直視)하며

    • 입력 2019.12.30 08:56
    • 수정 2020.01.16 11:36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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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이외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청춘들은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나이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진취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도전을 꿈꿀 나이에 안주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떤 면에선 안타깝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그치기엔 머쓱한 점이 없지 않다. 그 만큼 그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독일 뉴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이 연출한 영화(Angst essen Seele auf. 1974년 작)다.

    드라마의 시작은 농담처럼 시작된다. 밤이면 소외된 이들이 모여 술로 자신을 위로하는 어느 골목의 선술집. 단골 중 한 사람이 아랍계 외국인노동자로 술집에 자주 들리는 주인공 알리에게 구석에 외롭게 앉아있는 초로의 여인과 춤을 춰보라고 부추기는 장난을 건다. 알리가 여자에게 다가가고 둘은 춤을 춘다. 이후 그녀는 알리를 집으로 초대하고, 커피를 같이 마시고, 마침내 그들은 소통하기 시작한다. 

    사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제목은 외국인 노동자 알리가 여자 주인공 엠미에게 문법에 맞지 않는 서투른 독일어로 전한 위로의 말이다. 그러나 알리가 처한 현실은 누구를 위로해줄 처지가 되지 못한다. 말하자면 알리가 엠미에게 건넨 말은 상대에 대한 위로의 말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향한 위로의 말이다.

    생각해 보면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 녀석이 불안 불안해 보였던 것은 부모로서 나 역시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사춘기의 자식을 맞이한 아버지 역할 또한 처음이기에 당연히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청춘들이 불안을 호소할 때마다 교수자로서 짐짓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보지만, 사실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내 자아와 맞닥뜨리곤 한다. 사실 불안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걱정거리로 가득 찬 생활 속에서 상담자를 자처한다는 것은 별도의 상담을 받아야 할 일임이 분명해 보인다. 

    사유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태어나면서 어머니에게 분리된 순간부터 그 낯선 공기의 느낌을 불안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평정심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요원한 노스탤지어로 생의 한편에 자리 잡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결핍을 가져온다. 결핍은 우리로 하여금 대상 세계를 욕망하게끔 이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욕망은 잃어버린 어머니의 자궁을 대체하는 대상과의 합일을 말하지만 생활세계에서 결핍은 종종 균형감의 상실로 다가온다. 

    그러나 균형이 깨졌을 땐 반드시 자정작용처럼 불안이 동반된다. 말하자면 불안감은 균형의 깨짐을 알리는 경고다. 마치 지진이 판과 판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맞출 때 수반되는 현상인 것처럼, 불안 역시 마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자정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때문에 불안은 회피할 무엇이 아니라 직시해야 할 내면의 역동성이다. 

    주변의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이 불안으로 몸부림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균형을 맞추는 일종의 의례임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나와 상대의 불안을 보듬고 인정할 수 있다. 12월 31일 2019년의 마지막 날, 새해를 맞이하기 앞서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불안을 긍정해 본다. 매일 매일이 처음이라 우리는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은 설렘의 다른 모습이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게 불안을 직시하는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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