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쓰는 산문] 허울과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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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쓰는 산문] 허울과 껍데기

    • 입력 2020.07.24 09:53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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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시인·수필가
    이향아 시인·수필가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橋梁가 6.25 당시만 해도 한강대교 하나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5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정확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아졌다.

    올림픽대교, 한강대교, 동작대교, 한남대교, 원효대교, 성산대교, 천호대교…. 얼핏 떠오르는 이름만 대강 셈해봐도 스물은 훨씬 넘는다.

    그런데 이 다리들은 하나같이 ‘대교大橋’라는 말을 이름 밑에 붙이고 있다. 대교란 글자 그대로 큰 다리라는 뜻인데, 한강의 다리들이 모두 대교라면 그보다 규모가 작은 ‘중교中橋’나 ‘소교小橋’를 의식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중교라는 말도, 소교라는 말도 없다. 구태여 대교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강동교 강서교, 강북교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개천이나 시냇물에는 징검다리가 있고, 한두 개의 통나무를 가로질러 겨우 건널 수 있게 만든 외나무다리도 있다. 또 다리를 완전히 세우기 전에 임시로 설치한 가교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냥 징검다리요, 외나무다리요, 가교일 뿐 다른 말들이 뒤에 붙지 않는다.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가 있었다. 오래되어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적군의 수송로를 차단하기 위해서 콰이강에 놓인 다리를 폭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였던 것 같다. 콰이강의 다리는 길고 크고 탄탄했다. 그러나 대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그냥 콰이강의 다리다.

    센프란시스코에 있는 큰 다리 금문교에도 대교라는 말은 붙지 않았다. 시드니의 우람한 하버브리지 역시 그냥 다리(Bridge)다. 만일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Bridge를 한국말로 옮기라면 틀림없이 ‘대교’라고 하지 않을까.

    우리는 무조건 큰 것을 좋아하나 보다. 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은 것도 무조건 크게 부풀리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다리 이름 말고도 큰 대자가 붙은 것들이 많다. 숫자가 많든 적든, 규모가 크든 작든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는 무조건 ‘대회’라고 한다. 정기학술대회, 시민대회, 글짓기대회, 개교기념웅변대회, 그리고 춘계대청소기간.

    소강당도 중강당도 없는데 단 하나밖에 없는 강당을 대강당이라고 부르는 습관, 교문 위에 붙어있는 가을대운동회라는 현수막, 우리는 아무 데나 큰대자를 붙여 과시하려고 한다. 외양이라도 그럴듯하게 허풍을 떨면 평가가 높아지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풀린 이름에 비해 내용이 형편없이 허술하다면 부끄러움만 남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이름은 껍데기요 허울일 뿐이다. 노인대학 주부대학 교양대학. 대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평생교육을 하는 기관들도 많아졌다.

    수강생들에게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성실한 자세를 준비해 달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면 대학이라 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라고 해도 아무 탈이 없고, 학교보다 규모가 작은 ‘교실’이라고 부르면 작기는 해도 훨씬 더 정겨울 것이다. 
    명절에 판매하는 선물 꾸러미 중에는, 이것저것 허접한 것으로 공간을 채워 포장만 크게 부풀린 것들이 많다. 허울과 껍데기인 포장을 제거해 버리면 정작 받은 선물은 형편없이 적게 움츠러든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물론 준 사람의 정성을 고마워 하겠지만 좋은 선물에 대한 충족감은 줄어들지 않을까? 과장된 선물 꾸러미에 마치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작고 소박한 것들이 안겨주는 편안함, 겸손하게 낮추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비록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 진실함에서 느낄 수 있는 듬직한 신뢰.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런 것의 참된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

    겉으로 거들먹거리며 떵떵거리는 사람 중에는 비어 있는 곳간 같은 사람이 많다. 겉으로 실속 없이 부풀리는 사람은 속으로 감당하지 못할 골병이 들어서 남몰래 춥고 외로워질 것이고 스스로의 삶과 꿈에 부도를 낼 것이다.

    큰 것을 선호하는 것은 혹시 좁은 국토에 살면서 잠재적으로 느끼는, 거대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는 큰 것들을 누른지 오래 되었다. IT 산업으로 세계 최대의 와이파이 강국이 되었고, K-Pop은 세계무대를 흔들었으며, 근래 방탄소년합창단은 기네스북 세계기록을 달성하여 문화강국을 선언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한글은 그 과학적인 우수성을 인정받아,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과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제도에서 한글 교과서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스포츠는 피겨스케이트, 골프, 야구, 축구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우리도 능히 실속없는 허울과 껍데기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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