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분의 글소리] 시를 읽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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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분의 글소리] 시를 읽는 모임

    김금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 입력 2020.02.03 15:15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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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김금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현대인에게 있어서 고독은 필연적 메타포라는 말이 있다. 분쟁과 질병, 경쟁과 쟁취는 결국 고독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해와 건강, 평등과 나눔이 충만한 세계가 도래했다고 고독이 해소되는 것일까. 사람 속에 섞여서도 외로움은 등을 타고 오르내리고, 한 트럭 분의 말을 하고서도 돌아서면 허전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 가진 듯 하지만 결핍의 존재, 그것은 우리가 가진 천연의 외로움에서 비롯될 것이다 . 물론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사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하지만 인생 전체를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지다가 이미 저 세상으로 기지국을 옮긴 지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음을 발견했다. 삭제키를 누르려는데 선뜻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에 대한 기억과 늦은 안부와 죽음의 기별인 듯 애틋한 마음에서다. 누군가의 글에서 봤다. 자기 아버지의 생전 일기장을 넘겨보다보니 "종일본가(終日本家)"라는 넉 자가 거의 다였다고 한다.

    매일 집 안에서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는 노년의 생활이 고스란히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자발적 고독이라고 쳐도 그 일기장을 넘기는 공통된 심정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남다른 재미에 푹 빠진 모임에 나가고 있다. 육 칠십 대 여섯 명의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내는 그룹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것도 가볍게 차 한 씩 나누는 카페에서 즉석으로 결성된 것이다.

    모임의 명칭도 그날 마신 차의 이름으로 재미있게 정했다. 가끔 특별 게스트로 손님을 모시기도 하는데, 그 중 한 분의 영향으로 이후 모임의 성격이 만들어졌다. 소박한 밥상을 물리고 나서 손님께서는 초대해준 답례로 시낭송을 하고, 그 화답으로 우리 팀에서 한 분이 또 장시를 암송한 것이다.

    답답하고 까무룩한 세상사에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날의 시 제목 또한 나태주 시인의 "선물"을 잔잔하게 풀어줬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모임에서도 새로운 시가 읽혀진다. 암송을 하는 어려움과 노력을 알기에 시 내용 못지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각자의 생활과 경륜을 통해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앞으로 전진하는 젊은 생각과 여유있는 농담, 명징한 통찰력을 겸비한 해석들이어서 더욱 즐겁다.

    그날의 시가 주제가 되기도 하고, 사람 사는 걱정과 더불어 다음 달에 암송할 부담을 안고 가기도 한다.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찾아 외우고 설명하는 눈빛들 속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거듭 확인한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부담없이 자기 도취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이 멋지다. 서로를 존중하며 호응하는 마음을 나누는 노년의 품격을 갖춘 그 분들과의 모임 또한 귀하다. 만나면 반갑고 흥겨운 좌석이 되기 위해 모두 경청과 긍정의 언어가 풍부하다.

    누구에게나 고독과 외로움이 설핏 기웃거리기도 하겠지만, 필요한 분량만 남겨놓고 나누어갖기를 희망한다. 조지아 오키프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마지막 줄에 " 멀고 가까운 곳에서" 늘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거리는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나이 들수록 따뜻한 안부와 글 한 줄, 시 한 편, 밥 한 끼 나누는 모임이 삼삼오오 이뤄지는 덜 고독한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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