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퓰리즘과 대의 민주주의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고] 포퓰리즘과 대의 민주주의

    • 입력 2024.04.30 16:40
    • 수정 2024.04.30 16:43
    • 기자명 유채연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2018학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채연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2018학번
    유채연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2018학번

    또 포퓰리즘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예산은 고려 않는 정책들이 쏟아졌다. 여야는 서로의 정책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 바쁘다. 포퓰리즘은 한국 사회의 식지 않는 감자다. 2002년 참여정부 출범과 2010년대 무상급식을 필두로 한 선별·보편 복지 논란이 대표적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과 민의 수렴이라는 옹호가 충돌했다. 이렇듯 포퓰리즘에 대한 양면적 평가는 태생적이다. 대의 민주제와 맥을 같이해서다. 대의 민주주의가 ‘유권자 다수를 위한 정치’를 핵심으로 삼듯 포퓰리즘은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바탕에 두고 있는 한, 포퓰리즘을 둘러싼 논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정의와 부합한다면, 포퓰리즘은 왜 논쟁의 대상에 오르는가. 논의의 시작은 포퓰리즘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서부터다.

     포퓰리즘은 민의를 왜곡한다. 국민의 요구, 즉 민의라는 명분 아래 단기적 이익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민의에 의한 것이라는 논리는 단순 명쾌하다. 이는 정치적·경제적 혼란기에 더욱 편리하다. 불경기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의 포퓰리즘은 이를 파고들었다. 지난해 당선된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경기 회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기톱으로 정부 지출을 잘라내는 강렬한 퍼포먼스는 냉정한 비판 대신 흥분과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개선된 삶’을 바랐던 민의는 그 과정에서 ‘긴축 재정’으로 변질됐다. 장기매매 합법화, 국가 화폐 없애기 등 급진적인 수단에 대한 설명과 논의는 부재했다. 정치를 숙고할 삶의 여유가 없는 대중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다. 민의를 따른다는 설명 한 줄이 총기와 장기매매를 합법화하는 극단적 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이 원한 것은 경제적 안정이지 극우적 행보가 아니었다. 민의를 왜곡하는 포퓰리즘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포퓰리즘은 사회의 발전 걸림돌로 작용한다.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적 이익에 함몰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국민연금 개정안, 전기세 및 대중교통비 인상안 등이 대표적이다. 제도를 개선할 시급성에 공감하면서도, 당장 이익에 얽매여 뒷전으로 미룬 정책들이다. 정치권은 여야 없이 ‘민생과 민의에 반한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개편이 늦어질수록 사회 전체의 손실은 커지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의 민주제의 구조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한층 문제가 있다. ‘민의’를 방패로 내세운 정치적 의제들이 정당과 의회의 숙의 없이 정책으로 편입된다. 근시안을 넘어 무(無)시안적 정책들이 쏟아지는 건 그 결과다. 제21대 국회의원 기준 공약의 3분의 1은 검증조차 불가했고, 나머지의 3분의 1은 임기 내내 보류됐다. 당선을 위해 실현 가능성도, 의지도 없는 공약이 남발된 것이다. 표 심성 공약에 대한 논란은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반복됐다.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포퓰리즘의 함정은 민의를 올바르게 읽고 해석할 때 빠져나올 수 있다. 정치 권력은 대중적 요구에 미래를 더해 민의로 제련해야 한다. 대중적 요구를 거울처럼 비추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관점을 더하고 다양한 논의 절차를 거치는 숙의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공론을 구성하는 대중의 성숙한 태도와 참여도 필수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자인 위고 메르시에는 저서 ‘대중은 멍청한가?’에서 대중은 ‘열린 경계’ 기제를 통해 정치인의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검증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음을 논증했다. 대중은 ’열린 경계’의 능력을 발휘해 공론을 형성하고, 정치권은 공론에 대한 논의와 검증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쏟아낸 정책들은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검증의 능력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하자. 정략적 포퓰리즘이 아닌 대의 민주제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